전통 조회 수 4123 추천 수 0 2012.03.03 10:56:27

봄이다.

얼었던 주변 저수지 물이 풀려서 그러는 게 아니다. 또한 모과나 매화 새순인 돋아나서 그러는 것도 역시 아니다.

겨우내 움츠려 있던 내 몸이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. 해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길을 나서봤다. 예전에 무당파 주

지와 곤륜산에서 사흘 밤낮 동안 피 터지는 대결 끝에 겨우 빼어놓은 갑표 두 장이 있는데, 그걸 양 허벅지에 붙이

고 축지법을 쓴다면 겨우 두 시간 정도로도 남도 800리쯤은 휘휘 돌아 올 수 있겠지만, 괜한 사람들 놀라게 하는 것

도 좀 그렇다는 생각에 그냥 걷기로 했다. 봄을 느끼는데 이보다 더 좋을 게 어디 있겠는가.

 

길옆으로는 지난여름에 무성했던 온갖 잡초들이 바래져버린 모습으로 꿈을 잃은 체 켜켜이 쌓여져 있다. 또한 서릿

발이 녹아버린 언덕은 보는 건만으로도 끔찍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질척거렸지만, 저만치 햇볕 잘 드는 대나무 밭 아

래에서는 산비둘기 떼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른다. 서해안고속전철사업으로 생각도 못한 곳이 잘려져서 엉뚱한 곳으

로 대형 덤프 차량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분주하건만, 지난 수해로 손을 놓은 농지는 아직도 여전히 어떤 움직임도 찾

아 볼 수 없다. 봄이란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완급이 있을 것이다.

 

길을 나선지 겨우 한 시간 남짓해서 첫 번째 저수지인 육리 방죽에 도착했다. 쉬엄쉬엄 걸었음에도 불과하고 대략 4km

정도를 걸어 간 것이다. 물이 조금 맑았다. 수초 사이로는 다소 흐릿해진 것 같은데, 전체적으로는 낮은 수온으로 바닥이

보일 정도였다. 해안가가 아닌 내륙지방이라 본격적으로 물속에서 봄을 건지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. 성질 급한

몇몇 낚시꾼들이 벌써 지나갔는지 눈에 거슬리는 흔적을 남겨 두었다.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한결 같아야 한다.

 

걸을 때마다 옷이 스쳐서 나는 소리가 유별스럽게 크게 들렸다. 언덕을 몇 개 넘어가고 마을도 없는 산길을 걷다보니, 문득

주변이 모두 정지되어버린 것 같았다. 큰 소나무 옆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. 돈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,

과연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를 생각해 봤다. 최소한 상위 1% 안에는 들어 있을 것이다. 매번 100대 부자의 명단이 발표 되는

데, 한 번도 그 안에 내 이름은 없었다.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. 국세청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일이겠으나, 난 그들이 징수

를 못하게 원천적으로 모든 재산을 은닉해 두었기 때문이다. 우선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저수지들이 믿을 진 모

르겠으나, 모두 내 저수지다. 혹시나 해서 간혹 산속 깊은 곳에도 숨겨놓았다. 그것뿐이 아니다. 그 복잡하고 드넓은 수로며

하천 그리고 강 또한 내 것이다. 누구도 그만한 돈은 이 세상에 없다. 또한 강계에는 물론이고 한다하는 저수지 대부분에 갈

대며 부들 그리고 여귀 풀을 가꾸고 있다. 다 찌 재료들이다. 전국 산야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역시 그렇다. 그 껍데기로 솔피

찌를 만들기 위함이다. 이걸 어찌 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꼬. 그런데 또 봄이 왔다. 아직 가봐야 할 저수지들이 너무도 많고

만들어야 할 찌 재료들이 그렇게 쌓여 있는데... 봄을 간직한 마음이라면 누구나 다 부자인 것이다.

 

길을 나선지 두어 시간 만에 두 번째 저수지인 소재지에 도착했다. 몇 년 전에 두 마리의 월척을 낚은 곳이다. 주변에 대형

돈사가 생겨서 걱정이 되는 곳이다. 저수지 가운데에 볼 상스럽게 좌대 같은 가건물이 보였다. 전에 없는 것이라 다소 생뚱

맞았다. 이왕 있는 거 좀 산뜻하게 만들었으면 더 할 말도 없을 것이다. 그게 아니라면 아예 철수를 해버리던가. 거의 다 무너

져버린 꼴이 꼭 폐가를 물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. 저수지 전체 그림이 그것 하나로 완전히 깨져버렸다. 누굴 탓하겠는가. 그저

무지함과 괜한 아집이라는 것 밖에... 그런 사람이 항시 진짜 낚시꾼이라고 우기는 법인데, 그게 더 걱정이라면 걱정이다. 봄이

란 유리잔과 같다. 서로의 각별한 주의가 없으면 금방 깨져버릴 수 있다.

 

모처럼 걷다보니 땀은 났지만, 몸은 시원했다. 낚싯대 없이 물만 보고와도 한결 마음이 여유롭다. 이제 몇 번의 봄비와 꽃샘

추위만 지나고 나면 봄은 한꺼번에 몰려 올 것이다. 마음이 바빠졌다. 미리서 낚시장비들을 끄집어 내 준비해 둬야겠다. 모르

긴 몰라도 붕어들 역시 지금쯤이면 윗입술을 다듬고 있을지 모른다. 봄이란 모든 것에 있어 바쁜 계절이다.

 

고맙습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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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복이

2012.03.03 14:20:54
*.157.176.83

다음 이야기가 있을것 같은데요~

부럽습니다.전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 일원만 지껀데...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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챔프

2012.03.03 22:44:44
*.222.127.238

봄은 봄인가 봅니다

글을적는 님의 마음에도 ---보는 저의 마음에도 ---

             ----엄동설한 긴긴밤의 무거움에 짖눌렸던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끼니 말입니다

그러고 보니

님의 말씀처럼 ---저도

국세청과는 관계없는 부자인가 봅니다

저는겨우--- 대산수로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만 --ㅎㅎ --평수는 제법 나갑니다

건강 하시구요

좋은글 -----잘 읽고 갑니다

물레방아

2012.03.04 01:51:00
*.151.104.215

겨울에 움추려던 몸을 봄에는 누구나 물가에 마음은 있지만 사는게뭔지.

붕어꾼님 자주 오세요.^^.

profile

땜방

2012.03.04 17:05:37
*.130.252.154

정말  재미 있게  잘  읽었습니다.  아주  소설같은 봄소식에 나  맘 까지  훈훈해  집니다.

곳끝에는   벌써  봄이  온것  같네요,개울에는  버들강아지도  이미  싹이 트고  내일이  경칩이니까 

다음주는  물  낚시가  될듯  합니다.  난  벌써  부터  연장   다  딲아  놓고   숨고루기를  하고  기다리고 있습니다.

오솔길

2012.03.05 11:48:59
*.148.68.160

이제 봄!

시즌이 막 오픈 되었지요.

운치있는곳 찾아 삼만리 돌아 다니는 계절입니다.

좋은곳 많이 찾아 심심 만복 하세요.

profile

풍암

2012.03.05 17:36:50
*.211.77.237

지난주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대를 드려놓고

봄을 만끽했습니다.

조과는 없었지만 나비도, 꽃등애도 보고

아주 여유로은 봄을 느끼고 왔습니다.

글 넘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.

천왕봉

2012.03.05 19:18:43
*.151.54.141

저는 섬진강  하나   지리산 이  내껍니다 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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월의꿈

2012.03.05 22:59:35
*.123.81.163

독백같은 글에

잠시 쉬어 갑니다

profile

하얀상어

2012.03.06 09:19:05
*.32.233.100

수필 한편 읽듯 그렇게 잔잔하게 잘 봤습니다.

暗默知

2012.03.06 10:28:51
*.50.80.198

늘 지평천 노을을 연상케 하는 붕어꾼님의 글에~

비오는 심란한 아침을 누여 봅니다.

 

그제, 모처럼 홀로 소류지의 밤을 보내며~

조급함보다는 기다림으로 순응하는 자세를 잊고 있었음에~ 탄식하고 돌아왔습니다..

 

건강한 발걸음 소식 또 기다려 봅니다.

 

봉황

2012.03.06 10:50:27
*.142.217.230

좋은글귀 잘보았습니다

언제~~~~

봄이 오려는지....

profile

또랑붕어

2012.03.13 11:07:18
*.150.80.98

한편의 동영상을 보는듯 합니다.

 

감사합니다.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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